좋았던 공간을 떠올려 보면 크기보다 빛이 먼저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벽에 길게 드리운 오후 그림자, 돌 표면에서 퍼지던 반사광, 어두운 입구를 지나며 눈이 천천히 적응하던 순간이 공간의 깊이와 온도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설계를 시작할 때 같은 자리를 아침, 낮, 저녁에 다시 찾습니다. 창의 높이와 방향, 주변 건물의 그림자, 계절에 따른 해의 각도를 기록합니다. 이 자료는 분위기를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료와 동선을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재료는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매끈한 표면은 빛을 바로 반사하고, 거친 표면은 작은 그림자를 오래 남깁니다. 같은 회색 돌도 빛이 정면에서 닿을 때와 옆으로 스칠 때 색과 깊이가 크게 달라집니다. 재료 샘플을 실제 설치 방향에 세워 하루 동안 확인하는 이유입니다.

빛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면을 밝히고, 어느 곳을 어둡게 남길지 정하는 일입니다.
공간 전체를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곳의 밝기가 같으면 이동하기는 편하지만 시간의 변화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나누고, 사람이 이동하면서 눈이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하면 작은 창도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가 됩니다.
좋은 채광 계획은 완성된 모습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습니다. 날씨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표정이 나타나도록 여지를 남깁니다. 그 변화가 공간을 다시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